이순신 명량해전, 충무공이 직접 적은 명량해전 기록
1597년은 이순신 명량해전이 일어난 해입니다. 당시는 1597년 9월로 이순신 장군이 직접 남긴 난중일기에 그때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9월 초엔 배설이 도망갔고, 바람이 사납게 불어 배들을 관리하기 어려웠다는 기록이 남겨있어 이순신 명량해전 직전의 고충을 엿볼 수 있습니다.
9월 7일이 되면 적선 55척 중 13척이 어란포 앞바다에 도착해 조선 수군을 공격할 것이란 첩보가 도착합니다. 이 첩보는 굉장히 정확했고 이순신 장군은 야습이 이뤄질 거라 예상하시죠.
실제 야습이 이뤄지자 조선 수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이들을 격퇴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선견지명도 엿볼 수 있죠.
그러나 이틀 후, 원균을 두둔하고 이순신 장군을 비난하던 김응남이 독단적으로 인사 문제를 처리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와... 빡치네..." 라는 속마음을 난중일기에 그대로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16일, 마침내 이순신 명량해전 당일이 됩니다.
적선 1백 30여 척이 명량에 나타납니다. 조선 장수들은 겁이 나 도망하려는 꾀만 내고 있었죠.
당시 안위란 장군에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라며 타일렀고, 김응함은 "처형하고 싶지만, 전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라고 타이르죠.
그리고 영화 명량에서처럼 구루시마 미치후사(마다시)의 배를 침몰시켜 그 목을 얻습니다. 그러자 대장을 잃은 일본 수군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12척의 조선 수군은 그들을 몰아세웁니다. (실제론 1대 130).
난중일기를 통해 이순신 명량해전 전과 후를 알 수 있어요. 전쟁을 대비하는 모습과 전쟁 이후 모습 등이 담겨있습니다.
이순신 명량해전을 아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과 이후를 아는 것도 꽤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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